시각장애인들이 즐겨찾는 남산 북측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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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4 201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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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이 즐겨찾는 남산 북측산책로
원조격 시각장애인 산책로…각종 편의시설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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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입구인 국립극장과 케이블카 매표소까지 올라가는 북측산책로 구간의 모습.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돼 있어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찾는 곳이다. 산책로 도로 중간에 점자블록이 길게 늘어져 있다. ⓒ에이블뉴스 |
22일 오후 1시, 남산 입구인 국립극장에서 케이블카 매표소로 이어지는 북측산책로 구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북측산책로는 3.5km 구간으로 푸른 나무와 실개천이 어우러져 있으며,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데다 낭떠러지 등의 위험 구간도 없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성수동에 사는 시각장애 1급인 박광용(63) 씨도 이날 북측산책로를 찾았다. 등산가방에 등산화, 모자 등 등산 복장을 완벽하게 갖춘 박 씨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박씨는 "요샌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이곳을 찾는다"며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엔 새벽이나 저녁에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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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북측산책로를 즐겨찾는 박광용(63) 씨의 모습. 시각장애 1급인 박씨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북측산책로를 찾는다. ⓒ에이블뉴스 |
박 씨는 간지방 수치가 높아지자 건강이 염려돼 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다. 박 씨가 국립극장을 시작으로 3.5km 구간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40여분. 그는 "원래 이곳은 남산을 순회하는 관광버스가 다녔던 도로"라며 "내가 나올 때쯤 관광버스가 사라진 걸 보면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웃어보였다.
도심에서 가까운데다 자동차가 없고,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 출입이 통제돼 안전하단 입소문이 퍼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시각장애인이 몰려들고 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역의 시각장애인들도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방문한다. 박 씨는 "곳곳의 지자체에서 이곳에 견학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곳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산책로 원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산책로 곳곳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시설이 마련돼 있다. 도로 외곽부에 설치된 목재로 된 안전펜스를 비롯해 점자안내판, 현재 위치나 정보를 안내해주는 '음성유도기' 등이 그것. 최근 4월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 르네상스의 일환인 '남산 옛 물길사업'의 일환으로 북측산책로에 실개천이 개통되자, 산책로 도로 중간에 점자블록이 설치되기도 했다. 실개천에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단 시각장애인들의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실개천의 물소리가 들려 오히려 시원하고 산책하기 좋다"며 "도로 가운데 점자블록도 만들어지니, 지팡이로 짚고 길을 찾아가기 편리하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이곳 산책로에 점자블록이 완비된 것은 아니다. 박 씨는 "산책로 중간에 식당 하나가 있는데, 그 부분부터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인 케이블카 입구까지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건강 챙기고, 소중한 인연도 얻고
남산에 오르면서 박 씨의 건강은 나날이 좋아졌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성인병 검사를 하면 몸이 아주 건강하다고 나온다"고 말했다. 성수동이 집인 박 씨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면서도 꾸준히 남산을 찾는 이유인 것이다.
남산을 찾으면서 박 씨에겐 소중한 인연도 생겼다. 함께 산을 다니는 친구들이 생긴 것. 박씨는 "그 친구들이 내가 남산에 꾸준히 다니는 걸 보더니, 시각장애인인데 정말 대단하다며 함께 산에 다니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박 씨를 포함한 4명은 산악팀을 만들어 용문산, 지리산, 한라산에 이어 일본 후지산까지 꾸준히 등산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내게 '시각장애인인 너를 거울삼아 나도 열심히 살고 운동도 열심히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져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 남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하고 기분 좋다. 시각장애인이라고 못할 건 하나도 없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된다."
"산책로에선 반드시 우측통행해야"
남산 북측산책로에선 시각장애인 마라톤대회나 각종 시각장애인 모임, 행사 등이 자주 열리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할 점도 있다고 박 씨는 전했다.
"시각장애인들끼리 마주 오면서 서로 부딪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끼린 '우측통행'을 하자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데 안 지키는 사람이 있다. 꼭 남산에선 우측통행을 해야 한다."
그는 "서울시가 음성유도기에 '우측통행'을 안내하는 내용을 넣어주면 사고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백두산을 등반하고 싶다는 박 씨. 그는 "몇 년 뒤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 전엔 꼭 한번 올라보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선 더욱 더 꾸준히 남산을 찾아 운동할 것"이라고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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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용 씨가 북측산책로 마지막 구간인 식당에서 케이블카 입구 구간까지 걸어가고 있다. 이 구간은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에겐 위험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에이블뉴스 |